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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R은 현실과의 경계를 흐려, 가상으로의 완전한 몰입을 실현하게 해줄거라는 환상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오주영의 <가상환경조정기 I>는 시야보다 낮은 위치에 놓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불편한 자세로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불편한 자세는 가상환경으로의 완전한 몰입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계속해서 현실에 놓인 자신에게 주어진 신체 조건들을 의식하게 만든다. 가상환경을 바라보는 몸과 몰입을 방해하는 불편한 몸의 간극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없게 하고, 이러한 불편한 자세를 통해 끝내 마주하게 되는 것은 VR이 제공할 것이라 기대하는 ‘완벽한’ 시야가 아닌, 몰입할 수 없는 하나의 고정된 장면과 마주하게 될 뿐이다. 구현가능한 기술을 통해 구현하지 않는 창작자의 ‘고의’는 우리가 그토록 긍정하는 기술은 인간의 정신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이상적인 기술은 과연 우리를 이상적인 사회로 이끌어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는 듯 하다.

WERE I WEAKER AND BLINDER IT MIGHT BE HAPPINESS.
WERE I STRONGER, IT MIGHT BE ENDURED HOPEFULLY.
BUT BEING WHAT I FIND MYSELF, ME THINK I AM OF ALL MORTALS THE MOST FIT TO DIE.
내가 만약 약했거나 눈을 가렸다면, 삶은 행복이었을 것이며,
내가 강하였다면 이를 희망적으로 견뎌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발견한 건데, 내 생각에 나는 모든 필사의 운명 중 죽을 운명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보는 방식과 기능을 제공한다.

또 그 시각의 패러다임은 실제로 “실현 가능한 알고리즘’이다. 

  BirthMark는 작품을 감상하는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인간 마음의 기본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인지 및 지각작용이 있다는 가정하에, 70년대 개발된 ACT-R 인공인지 모델을 활용하여 가상의 관객의 인지 과정을 모델링한다. (…) BirthMark는 기본적인 관객의 인지 지각과정상태를 최초의 감상(Camoflage), 작가의 의도(Solution), 통찰(Insight) 세 가지로 정의하는데, 이 때 인간의 발음과 가장 유사하게 학습시킨 인공지능 보이스인 Rachel은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읊게 된다. “시선을 왼쪽으로 옮긴다.”, “화면에 보인 이미지를 인식했다”, “이를 기억에 저장했다” 등. 작품의 시작 지점의 데이터와 결과 값은 오래된 환등기의 작은 화면에 영상과 함께 띄워진다.
(…) 3면의 프로젝션된 스크린과 70년대 환등기 스크린을 통해 전시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인식의 결과물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상관객모델을 제안하여 최첨단 기술의 의미와 시스템적 한계 속에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노트 중

  <Birthmark>에서는 최첨단 기술로도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 주목한다. 프로젝션 스크린과 70년대 환등기 스크린은 전시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결과물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BirthMark>를 바라보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품 인식에 있어서의 ‘정답’일까? 아니면 최대한 많은 가짓수의 감상 방법을 확인해보고자 하는 희망일까? 혹은 그저 AI 기술이 어디까지 구현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일까? 아니면 AI의 실패를 통해 감성은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이 위태로운 모래성을 지켜내고 싶은걸까?

  분명한 것은 <BirthMark>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화면을 향하기보다 우리 내면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람자가 자발적으로 걸어들어온 다방, 즉 기형적 노스텔지어로서 존재하는 스펙타클과 직접적으로 시각적 환영을 제공하는 미디어 작업들은 기대로 가득찬 관람객의 시선을 도리어 반사시킨다. 반사된 시선은 다방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자신, 그리고 문래에 뿌리내린 다방으로 향한다. 이렇게 <가상환경조정기1>과 <Birthmark>는 우리에게 망각된 주체를 상기시키면서, 우리의 지각 방식을 내면화하여 인식, 성찰하게 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조윤주&김아영


<BirthMark: 예술작품을 보는 인간의 정신 시뮬레이터>


  작가 오주영은 <BirthMark>를 통해 인간의 언어와 기호가 입력된 인공지능 장치를 사용해 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 실재에 주목한다. 그는 복잡한 상징체계인 예술작품을 기호체계로 분절해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인간 고유의 정신을 환원하거나 넘어설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인공지능은 환등기 스크린을 통해 전시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인식의 결과물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컴퓨터는 예술작품의 미학적 요소들을 측정 가능한 단위까지 분해하고, 작품 관람자의 인지-지각 과정을 최초의 감상, 작가의 의도, 통찰 세 가지로 단계로 규정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인공지능 보이스 Rachel의 목소리로 송출되며 계산된 데이터값은 오래된 환등기의 작은 화면에 영상과 함께 띄워진다.

 

  정신적인 인식 과정을 기호화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존재라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결핍된 존재로서의 불안을 견디려고 한다. 그러나 데이터값은 그저 불완전한 자아를 은폐하는 상징계 주체의 언어와 기호를 반영한 것일 뿐이다. 인간은 그 너머에 있는 실재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그것을 끝없이 욕망하지만 인공지능에게는 욕망이 없다. 인공지능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인간 정신 속 초과분의 것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결핍되고 불안한 인간은 현존재로서의 불안을 느낄 필요 없이 그 자체로 합리적이고 완전해 보이는 인공지능을 신성시하기도 한다. 작가는 최첨단 기술인 인공지능이 결코 인간 정신을 환원할 수 없음에 무게를 싣고 기술에 부여된 신성을 제거하려 한다. <BirthMark>는 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 실재를 은폐하는 동시에 실재의 흔적과 증상을 드러내고 있다.

조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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